사람사는 이야기/오도재

[스크랩] 똑 같은 인생

오도재 2010. 1. 12. 13:50

우리 아파트에 멋쟁이 할머니가 한분 계셨습니다

유식한 할머니라고 불리는 그 분은 팔순 나이에도 지적인 향기가 몸에 배여

노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은빛처럼 해맑아 보였습니다

지적인 품격과 세련미를 풍기는 그 할머니는 언제나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거나

등나무 아래 긴 벤치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허름한 몸빼나 깡통치마 차림의 우리 어머니 모습과는 대조적 이었습니다

 

어느날 나는 어머니 에게서 멋쟁이 할머니가 다른 노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를 넌지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 잘난척 하는 할망구?

지가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다구 무식한 망구탱이들 하고 우리를 무시혀,

노인정 노인네들, 그 할망구 다 싫어 해야...

 

그로부터 얼마뒤 나는 멋쟁이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등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어 가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것을 보고 적이 놀랐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할망구가 젊어서 외국 여행 갔던 일을 자랑하더라

그래서 나는 젊었을때 발바닥이 물캐지도록 걸어 댕김시로 두부장사해서 너 대학 보낸 이야기를 해줬다

아무리 잘난척 해도 지나 내나 똑 같은 인생인겨...

 

그해 어느 따뜻한 봄날.. 멋쟁이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 지셨습니다

병문안을 다녀 오신 어머니는 멋쟁이 할머니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더라면서 이 봄을 넘기지 못할것 같다고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뒷따라 가면 모른척 말고 반갑게 맞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멋쟁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어머니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온종일 우두커니 앉아 계셨습니다

시작과 과정이 다른 삶이라 해도

결국 인생의 끝은 모두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靑林산악회
글쓴이 : 신관사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