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에 인접국이었던 오나라와 월나라는 자주 전투를 벌였고, 기원전 497년 오나라가 월나라를 크게 이겼습니다. 월왕 구천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오나라에 항복하여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됩니다. 그는 오왕 부차를 감언이설로 속여 신임을 얻었고, 3년 후 석방되어 오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구천은 귀국한 후 나라의 수치를 잊지 않으려고 잘 때도 땔나무 위에서 잤으며, 천장에는 쓸개를 걸어 놓았습니다. 10년간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구천은 결국 오나라를 쓰러뜨렸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목표를 위해 혹독하게 매진하거나 분발하는 사람, 혹은 그런 행동을 가리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가시밭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입니다.
오와 월은 이렇듯 앙숙지간이었지만, 그런 그들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면 서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입니다.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동주공제(同舟共濟)나 폭풍우 속에서 한 배를 탄다는 풍우동주(風雨同舟)도 이와 뜻이 엇비슷합니다. 처한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손잡고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와신상담과 오월동주, 그 후 두 나라는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인계 일화가 등장합니다. 오나라에 일격을 당해 멸망의 위기에 처한 월왕 구천이 미인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칩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차는 서시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고, 결국 부차는 구천에게 크게 패해 오나라가 멸망하고 맙니다.
서시와 관련해서도 고사성어가 전해옵니다. 서시는 속앓이가 있었는지 가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미인이어서 찡그린 모습마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못생긴 여자가 자기도 찡그리면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까 봐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다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녀를 비웃었고, 이로부터 서시빈목(西施嚬目) 성어가 생겨났습니다. 서시를 따라 찡그리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이치를 그 여자는 왜 몰랐을까요.
당시 월왕 구천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그의 와신상담을 도와준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대부 범려, 다른 사람은 대부 문종입니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범려가 문종에게 말합니다. "떠납시다. 우리의 임무는 이미 끝나지 않았소? 구천은 환난은 같이 겪을 수 있지만 부귀는 같이 누릴 수 없는 사람이오. 날아다니는 새를 다 잡으면 활은 창고에 버려지고, 교활한 토끼를 잡으면 열심히 뛰어다녔던 개를 삶아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새를 다 잡으면 활은 창고에 버려지고, 토끼를 잡으면 개를 삶아 먹는다(鳥盡弓藏 兎死狗烹 조진궁장 토사구팽)'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범려는 월왕 구천을 떠나 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월나라 미녀 서시와 함께 떠났다고 합니다. 문종은 남기로 하고 범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 공로를 세웠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지금은 그 영광을 누릴 때인데 내가 왜 떠난단 말이오?" 그런 문종은 어떻게 됐을까요?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이치가 그때나 이때나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국힘당 이준석의 처지가 토사구팽에 다름 아닙니다. 대표직을 박탈(정지)당하고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습니다. 6개월 징계가 끝나면 대표직에 복귀하겠다는 속내를 비쳐보지만 아마도 그 동안에 검찰권력에 의해 기소를 당하고, 정치적 재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준석으로 상징됐던 청년정치의 실험도 결국 실패로 막을 내리겠지요.
그런데 이준석이 젊은 혈기만 믿고 스스로 화를 자초한 측면은 없는 것일까요? 아래에 비유 하나를 더 적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다보니 (0) | 2022.09.08 |
---|---|
당랑거철(螳螂拒轍) (0) | 2022.08.09 |
歸天(천상병) (0) | 2022.06.20 |
손녀들이랑 (0) | 2022.05.12 |
22봄철 문화원 문화 탐방 (0) | 2022.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