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들어가고 물러날때와 시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손자병법)

오도재 2023. 1. 19. 10:39
들어가고 물러날 때와 시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50대에 접어들면 각각의 영역에서 그 역할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다. 아니 어쩌면 끝난 시기다. 예전에 유행했던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놈)를 지나와 보니 허튼 말이 아니다. 50대에 접어드니 가끔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쓰나미처럼 고독이 덮쳐온다. 왜? 어디서? 이유도, 원인도 모르겠다. 속수무책이다. 아직까지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오고 있지만 드문드문 느끼는 이 허한 느낌과 쓸쓸함은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왜 고독한가? 그리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아니 치유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

1 가정에서의 고독 : 밑빠진 존재감

50대로 접어들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의 존재감이 점점 떨어진다. 거의 바닥이다. 그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 나름 안간힘을 써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저울의 추는 나를 떠나 쏜살같이 상대편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아빠도 찾지 않는다. 아내에게 더 이상 내 말이 먹히지 않을뿐더러 자주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부모님도 세상을 등지셨거나 등 떠밀어 요양원에 보낸 것 같아 면목이 없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친구들끼리 연락을 끊거나 연락이 끊기거나 하고 아예 칩거에 들어가는 친구도 있다. 고립무원이다. 내 편이 하나 둘 그렇게 떨어지거나 멀어져 간다. 상당 기간 허탈감과 공허감, 그리고 공포감(?)에 휩싸여 망연자실이다. 그러다 서서히 내면을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동안 뭐 했니?" 독배를 삼키는 쓰디쓴 심정으로 반문해 보지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

존재감 대신 자존감이라도 키운답시고 이것저것(취미, 여행, 독서, 사색?, 운동) 해 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오히려 주변의 원성만 늘어간다. 존재감이고 자존감이고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주변의 지지와 격려가 없는 혼자만의 정신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고독의 농도만 더 짙어질 뿐이다.

2 사회에서의 고독 : 소외감

직장에서 은퇴하고 현역 시절에 쌓은 네트워크를 써먹어 보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지만 상대방의 심드렁한 반응에 의기소침해진다. 축소지향의 시대를 살아야 함을 직감한다. 아직 아이들 대학 교육도 못 시켰는데, 아직 자식들 출가도 못 시켰는데, 아직 부모님 문상도 못 받았는데... 대학 등록금과 결혼 청첩장 그리고 부고장을 보낼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모든 네트워크가 산산조각 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 그동안 내가 이런 정도의 대접을 받고 산 것이 실력이 아닌 명함 한 장이란 사실을 실감한다. 명함은 군대에서의 계급장이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다시 이등병으로 입대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이등병 시절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직장 생활이 원만했다고 퇴직 후의 사회생활이 원만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직장에서는 직급이 있고 명함이 있어 위계질서와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지만 퇴직 후의 사람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직장 밖에 나와 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상한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다. ㅠㅠ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낮은 곳으로 임할 생각이 아니면 소위 말하는 적당히 쉬우면서 적당한 월급을 주는 일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3 육체적인 고독 : 몸의 쇠함

고독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50대가 되면 몸도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아프고, 저리고, 시리고, 뻐근하고 안 아픈 곳이 없다. 족구 시합을 해보면 안다. 넘어지고 꼬꾸라지고 거기다 헛발질까지... 생각 속에서는 날아다니지만 코트에서는 기어 다닌다. 잇몸은 무너져 내리고, 소화 기능은 떨어지고, 근육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책 읽을 땐 돋보기 안경을 써야 하고 겨울엔 찬바람에 눈이 시려 밖의 외출도 꺼린다. 뱃살이 두툼하게 잡히고 다리는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밤에 한두 번은 꼭 깬다. 그래서 아침이면 비몽사몽이다. 수면의 질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떨어진다. 기력은 쇠하고 기억력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진다. 좀 있으면 관 속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매장(?) 되고 거기에 몸까지 부실하면 갈 때까지 간 것 아닌가?

몸의 쇠함을 상쇄하려고 몸에 좋다는 것을 찾아다니거나 약을 달고 살거나 건성으로 헬스클럽을 찾는 것처럼 안쓰러운 것도 없다. 적당한 일을 적당한 월급을 받고 하면 될 걸 시간을 낭비하거나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말은 새빨간 거짓말임을 나이 들면 안다. 육체가 쇠하면 정신도 쇠한다. 옛날로 되돌리려는 무리한 욕심 보다 육체가 쇠하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4 잉여 인간의 고독 : 역할 없음

고독은 단순히 밑빠진 존재감과 소외감 그리고 몸의 쇠함이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 셋은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고독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역할의 없음이다. 원시 공동 사회에서 역할 없음은 도태였고 도태는 곧 죽음이었다. 역할은 곧 소속감이고 소속감은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서 3번째로 중요한 욕구다. 그래서 다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자신이 초라해지기만 할 뿐 좀처럼 존재감이 회복되지 않는다. 존재감은 고사하고 자괴감만 쓸쓸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몸부림보다는 다른 무엇으로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소속된 역할이 없는 잉여 인간들이 제일 많이 내뱉는 독백과 푸념이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구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게 화내고 원망할 일인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나 없이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은 잘 살아야 하고, 나 없이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잘 굴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알고 보면 나 없이도 잘 돌아가야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잉여인간이 됐다는 사실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홀가분함이고 해방감이다. 이를 발전적인 그 무엇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리어 왕처럼 과거의 영광과 역할을 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50대 이후에는 과거의 역할에서 과감히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손자병법에 들어가고 물러날 때와 시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둘을 혼동하면 백전 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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