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부락』이라는 말 제발 쓰지 맙시다

오도재 2010. 1. 15. 14:40

           『부락』이라는 말 제발 쓰지 맙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얼룩이 들면 그 얼룩을 빼는 데에는 얼룩이 드는 시간의 몇 배의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머리, 즉 정신세계가 물이 들면 거기에 아주 젖어버리기 일수인데, 이를 본래의 모습으로 바꾸려면 철저하게 세뇌를 하여도 몇 대(代)를 거쳐야 바로 잡혀가는 것이 문화입니다.

필자는 지난 2000년 1월호 시보(市報)에서 ‘부락’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국민을 비하(卑下)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사는 마을을 ‘○○부락’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부락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마을’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 ‘부락’이라는 단어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다시 이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일제식민으로 해방이 된지도 60년이 다 되어감에도 아직도 일본제국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 이 나라의 뿌리가 과연 어디인지를 의심케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제가 한국을 멸시하면서 부르던 ‘부락’이라는 단어를 행정기관의 공무원이나 행정기관의 종적기능(從的機能)인 리․통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 등에서 유난히 많이 쓰고 있음은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부락’이라는 단어는 일제가 우리 한국의 국민들에게 심어놓은 나쁜 의미의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자기네들은 우월(優越)한 민족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무식(無識)하고 천(賤)하며 불결(不潔)한 국민이므로 우리나라 국민들과 일본인(日本人)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부락(部落)’이라는 말로 비하(卑下)하여 부르던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던 백정이라는 단어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고 있는 이 부락(部落)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일본에서는 17세기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민중지배정책의 하나로 부락차별이 생겼다는 설이 있으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몇 해 전부터 ‘군수 물자 동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특수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살도록 지정한 마을’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15세기후반부터 일본사회에는 무사들이 군림하던 전국시대로서, 그들이 가장 천민시(賤民視)하던 집단거주지를 ‘부락’으로 지칭하였는데 당시에는 백정(白丁), 선주(船主) 등이 모여 살던 마을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부락’이 남아 있으며 그들 부락에 사는 사람들의 취업이나 결혼 시에는 철저하게, 같은 민족이면서도 재일교포만큼이나 심하게 배척하고 멸시하고 있어 이들 부락에서는 자체로 ‘부락해방인권연구소’를 만들어 인권보장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난 2003년 4월 24일에는 80년 전 진주지역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의 기념사업회(회장 김장하)에서는 ‘21세기 인권발전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경상대학교 평화통일인권센터와 일본 부락해방인권연구소가 공동으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 바도 있다고 합니다.

2003년 7월초순경, 초등학교 4학년 국어(읽기) 책에 ‘부락’이라는 단어가 있음을 발견한 한 독자가 오마이뉴스에 제보하여 ‘부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도 부락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하는데, 대만 중화서국에서 낸 「사해」라는 책에서는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쓰는 말’로 되어 있고 중국에서의 ‘부(部)’는 서한 무제가 천하를 열 셋의 부(部)로 나누고 자사를 두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의 단위를 말하는 것이고, ‘락(落)’은 부락, 촌락에서 보듯이 그냥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후한서의 남만조, 선비조에 ‘일본에서는 오랑캐의 마을, 천민의 마을 등 이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는 내용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高麗史14卷-世家14-睿宗3-10-09-1115에 是月生女眞完顔阿骨打稱皇帝更名旻國號金 其俗如匈奴諸部落無城郭分居山野無文字以言語結繩爲約束... 고려사14권-세가14-예종3-10-09-1115에 시월생여진완안아골타칭황제경명민국호금 기속여흉노제부락무성곽분거산야무문자이언어결승위약속.... ( 시월(是月)에 생여진(生女眞) 완안부(完顔部)의 아골타(阿骨打)가 황제(皇帝)라 일컫고 이름을 민(旻)이라 고치고 국호(國號)를 금(金)이라 하였다. 그 풍속(風俗)이 흉노족(匈奴族)과 같아 모든 부락(部落)이 성곽(城郭)은 없고 산야(山野)에 나누어져 살며 문자(文字)는 없고 언어(言語)와 결승(結繩 ; 文字가 없었던 未開時代에 새끼를 맺어 그 매듭에 의하여 記憶 또는 意思를 疏通하던 한 方法)으로써 약속을 삼으며.....)’이라고 하는데서 부락이라는 단어가 나타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냥 마을, 촌락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멸시와 천대의 뜻이 내재된 차별언어(差別言語)의 아픈 증거인 부락이라는 말을 사용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토박이 말 중에 ‘마을’이라는 아주 정겨운 말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마을 표지석이나 곳곳에 쓰여져 있는 ‘부락’이라는 말은 이젠 깨끗이 지워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없애는데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들여서라도 이런 것들은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는 것을 강조(强調)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일제(日帝)의 잔재(殘在)만 허물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모든 잔재를 버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기에다가 조상 대대로의 숨결이 스며있는 아름답고 귀중한 우리 고유(固有)의 문화유산(文化遺産)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3. 12월 1일 발행 사천시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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