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오도재

밤 빨래 하다가 소박데기 십년(서답을 아시나요?)

오도재 2012. 7. 18. 13:40

밤 빨래하다 소박데기 십년.


열여섯 꽃나이 규수가

일곱 살짜리 코흘리개를 신랑으로 맞습니다.

번거로운 초례청 격식이며 얼굴에 모닥불을 지피던 신방치레며...


꿈결에 흘러간 사흘 -

그러나 정작 괴로운 일은 이제부터.

열여섯해 정든 집 떠나 시집살이 첫날, 호랑이 시어머니

여시 시누이의 사나운 눈총속에 폐백절만 무려 일흔 일곱 번인데 -

이를 어쩌랴, 엎친데 덮친다고 때도 아닌데 그만 터졌습니다.


친정 떠날 때 꾸려온 <서답 (빨래의 충청도 사투리로

(개집(생리대))이란 말이 천박하다 하여 별명으로 불림)> 꾸러미 덕분에

급한 불은 껐지만 갈무리며 빨래며

뒤치다꺼리에 동동 발을 구른 새댁.


투정하는 아기신랑을 겨우겨우 잠재운 새벽녘.

이때다, 행여 들킬세라 뒷곁 우물가로 달려가 <서답>을 빱니다.

그러나 아차, 소피보러 나온 신랑녀석,

<여우귀신 나왔다!>며 혼비백산.

시어머니 방으로  도망가 버린 뒤 - 독수공방 십년.


곱던 손때깔 솥뚜겅이 되어서야 배게를 나란히 하게 되었지만

그 사이 앓아온 냉가슴, 눈물진 사연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때부터 <밤 빨래하면 동네 초상난다>는 돌림말이

생겼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세월도 달라져 <패드>가 <서답>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것도 옛 이야기가 된 지금은 <탐폰>이라는

새롭고 과학적인 생리기구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편리해진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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